12번째 상념; 자존감...?
처음 접수했을 때의 의지와는 달리 성의 없이 강의에 임하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지금 사이버 대학교에서 상담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다. 프리랜서 생활을 청산하고 사무실에 출근을 하기 시작하면서 강의가 밀리기 시작한 관계로 어쩔 수 없이 중간고사 기간에 닥쳐서는 거의 강의를 흘려들었다. 그래서 사실 명확하게 생각나는 내용이 딱히 없다만, 한 가지 귀에 꽂혀 버린 부분이 있었다. 바로 '자존감'에 관한 내용이었다.
머릿속에서는 자존감에 대한 내 입장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것 같지만 입 밖으로 내뱉기가 어렵다. 어디 가서 입 밖으로 내뱉기 전에 블로그에 글이나 쓰면서 정리 좀 해봐야겠다.
몇 년 전부터 지금까지 식지 않는 뜨거운 감자로 계속해서 나오는 그 단어 '자존감'.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 단어에 질려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질렸다고 해서 자존감에 대한 고민을 멈춰서는 안 되는 것을 안다. 하지만 "자존감을 높이자!" "자존감 높은 사람이 최고야!" "난 자존감이 높아서~" 이런 류의 말을 들으면 간혹 이유모를 찝찝함이 남을 때가 있었다.
아마 대부분의 20대 중(필자가 20대여서 다른 나잇대는 함부로 예상을 못하겠다)에 스스로가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고 확언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이 자존감이 높다/낮다 중에 본인을 표현하는 말을 하나 고르라고 한다면 후자를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내 주변만 해도 그렇다. 스스로도 인정하고, 남이 보는 그들도 자존감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
자존감이 높다고 외치는 사람들은 대체로 멋있어 보인다. 일례로 최근 복합적인 논란으로 많은 충격을 줬던 유튜버 프리지아가 그런 높은 자존감과 자신감을 가장 큰 매력 포인트로 삼아 대중의 인기를 얻었었다. 그런데 나는 온몸으로 자존감이 높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진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 외치는 사람들 중에 나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들 자존감을 높이라고 한다. 요즘 사람들은 자존감이 너무 낮다고. 자존감을 높이고, 자신감을 가지고, 어깨 피고 당당하게 살라고 그렇게들 얘기를 한다. 관련된 책이 몇십 권, 몇 백 권은 쏟아진다. 그렇다면 이렇게 마냥 자존감이 높아지기만 하는 것이 정말 좋은 게 맞을까?
자존감이 높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는 당당한 모습이 멋진 사람들도 있지만, 그 정도가 과하여 자기가 가지고 있는 능력치나 어떤 수준 그 이상으로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경우 종종 거만해지고 심하면 다른 사람을 깔보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다 입을 모아서 자존감을 높이라고 하는데, 자존감은 그냥 끝도 없이 그렇게 높이기만 하면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자존감이 끝도 없이 높은 사람들을 보면 여전히 부럽긴 하다.
아래는 심리학 강의에서 자존감의 사전적, 학문적 정의에 대해 듣기 전에 썼던 글이다.
둘 중 더 쉬운 것은 전자다. 어렸을 때의 상처든, 다른 사람의 시선이든, 자기 비하든 많은 아픔들이 덕지덕지 붙어 자존감이 낮아진 사람이 한순간 돌아서 스스로를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혹여나 살이 붙었다는 것에 대해 자책하고 다이어트에 강박을 가지라는 것처럼 들리지 않을까 조심스러운데, 그게 아니다. 살이 찐 나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같다.
그렇지만 내가 진짜 자존감이 높다고 생각하는 것은 누군가 나한테 "너 뚱뚱해!"라고 말했을 때, "난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멋진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 나 요즘 많이 먹었더니 살 좀 붙었더라."라고 스스로의 모습을 그냥 그대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너 뚱뚱해!"라는 말을 한 사람은 무례하다.)
자존감이 떨어지면 피해의식이 올라간다. 상대방이 말한 가벼운 말에 덕지덕지 더 무거운 비난과 자기 괄시를 붙여버린다. 결국 공격하는 사람도 공격받는 사람도 나 자신이 되어버리고 마는 일은 마치 클리셰 같다.
- 여자, 외모 그리고 자존감에 대한 영화는 이래야만 할까 | 아이필프리티 후기
영화를 보고 비판적인 생각을 거듭해서 하면서 '건강한 자존감'이 따로 있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무작정 자존감을 높이라고 부추기는 것은 건강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없이 자존감을 높이되, 물질적인 것을 포함하여 내가 아닌 외부적인 것들을 과시하면서 자존감을 높였다고 착각하는 것, 자신의 모습을 잃으면서 자존감을 획득하는 것과는 반드시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를 '나 이상'으로 생각하는 것은 자존감이 아니고, '나'를 '나'의 모습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 자존감이 아닐까. 자존감이 높으면 높을수록 지금 스스로의 현상태를 가장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는 단계에 있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나는 그렇게 수업을 몰입도 있게 듣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정말 자존감에 대한 것을 알고 싶다면, 글의 중반이 되어서야 말하는 것은 좀 미안하지만 이 글은 추천하지 않는다. 어쨌든 수업 시간에 얼핏 들었던 자존감에 대한 내용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자존감은 자아존중감을 간단히 적은 말이다. 내가 나를 얼마나 존중하고 있는가, 그리고 존중할 수 있는가.
교수님의 강의에서 내가 자존감에 대해 이해한 바는 이렇다. 자존감은 낮아서도 안 되지만 내 수준 이상으로 높아서도 안 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명확하게 알고, 그 수준에 맞는 자존감을 갖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리고 이것만으로 내 모든 의문점이 풀렸다.
자존감은 결국 마냥 높다고 좋은 것은 아니었다. 높고 낮음 사이에 가장 바람직한 단계가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과 가치를 그 누구보다 스스로가 분명하게 알고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을 수준까지 자존감을 높여야 하는 것이었다. 내가 가진 것보다 과하게 넘치는 자존감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오만이다. 쉽게 말하면 근거도 실체도 없는 자존감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모든 테스트는 참고용이고, 절대적인 척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아래 링크의 테스트로 자존감 지수를 확인해보았다.
자존감 테스트 - 나는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가 (SEI 검사)
자존감 테스트, 자존감 자가진단, SEI , 자아존중감 , 자존감 자가진단 테스트
goldsaju.net
내 경우는 종종 친하지도 않고, 어떤 내용으로던지 평가받고 싶지 않은 대상에게 외모적인 칭찬을 받으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나도 알아ㅎ
외모 칭찬은 기분이 좋지만 어찌 됐건 굳이 필요 없는 제 3자의 평가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외모 칭찬은 종종 상대방에게 점수를 따기 위한 상황이나, 상대를 아랫사람으로 여겨 마치 심사위원이라도 된 마냥 점수를 매길 때 사용되고는 한다. 화장을 안 하고 출근한 날 회사 사람들이나 대학 동기들이 "누구세요ㅋㅋㅋ"라고 놀리는 것도 외모 평가다. 이런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칭찬에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한 시간을 넘게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대화 주제를 던진 친구는 대체적으로 겸손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대답은 겸손보다는 '나도 알아ㅎ' 태도에 가까웠다.
아, 제가 원래 그런 걸 좀 잘하는데
알아보시다니 역시 안목이 탁월하시네요!
'나도 내가 그 부분에서 뛰어난 걸 알고 있지. 그런데 그걸 알아보다니 당신도 만만찮은 사람이구나! 고마워!' 이런 느낌이다. 많은 사람들이 칭찬 알레르기가 있어서 칭찬을 부정하고 어떻게든 자신을 깎아내릴 요소들을 참 집요하게도 찾아낸다. 안타깝다. 다른 사람이 나한테 칭찬하는 것보다 내 가치가 훨씬 높은 사람이 더 흔할 텐데도 말이다.
자존감 테스트(SEI검사)의 첫 페이지에 비슷한 일화가 나와서 반가웠다.
그리고 내 점수는,
생각보다 낮았다. 아직 내가 그만큼 내 모든 수준에 있어서 만족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발전해나가고 있으니 내가 원하는 수준까지 도달한다면 자존감도 그만큼 따라와 줄 것이라고 믿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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