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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것인가, 믿지 않을 것인가 | 유주얼 서스펙트 후기를 빙자한 밸런스 게임 -1

FANCIES

by leechamoe 2022. 2. 28.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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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번째 상념; 영화 보고 뭐라도 남기고 싶었던 날의 기록
주관적 감상평, 스포 주의

 

 

MBTI상으로 적당히 N인 나와, 확신의 N인 남자 친구는 종종 엄청 구체적인 상황을 두고 밸런스 게임을 한다. 이번에 내가 떠올린 밸런스 게임의 주제는 아래와 같다.

모든 사람을 믿기
vs
어떤 사람도 믿지 않기


상황의 전제는 이렇다. 모든 사람을 믿을 경우, 그 사람을 믿음으로서 따라오는 모든 손해 또한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반대로 어떤 사람도 믿지 못할 경우, 믿음으로서 따라오는 모든 이익을 취할 수 없다.

남자 친구는 전자를 택했다. 나는 사실 아직도 그 답을 고민하고 있는데, 오늘 이 주제로 글을 쓰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우선 평소의 나를 돌아봤다. 나는 본래(?) 사람을 쉽게 믿고 신뢰한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잘 모르겠어서 본래라고 가정했을 때, 이십 여 년간은 그렇게 살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사람을 믿음으로서 나에게 돌아온 결과들이 대체적으로 좋지 않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런 결론에 닿고 나서는 최대한 의식적으로 사람을 믿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내 노력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면 당연하게, 그리고 쉽게, 이 밸런스 게임에서 후자의 선택지를 고를 수 있었을 텐데 그럴 수는 없었다. 뇌의 시스템 상 어쩔 수 없이 또 안 좋은 기억들에 우선순위를 부여해서, 긍정적인 경험보다는 부정적인 경험에 기반한 판단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이번 밸런스 게임의 아이디어는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에서 얻었다. "절름발이가 범인이야!" 이 말을 인터넷의 밈을 포함하여 몇 번이고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이게 설마 진짜 일 줄은 몰랐다.

사실 아니길 바랐다. 저 말을 믿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속으로는 믿고 있었는지 처음부터 어찌나 절름발이가 수상하던지. 덕분에 영화 줄거리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덕을 본 건지 손해를 본 건지 애매하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이 영화에서 모순적으로
사람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나오는지 세보려고 한다.
우선 (영화 속 이야기는 아니지만)
나부터 시작하자면 나는 인터넷 밈을 믿었다.

 

· 이디 - 키튼
이디는 키튼의 과거를 알지만 바뀔 수 있다고 믿었고 사랑했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의 능력과 위치를 활용하여 키튼을 보호하고자 했다. 키튼은 이디가 자신을 오명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해 줄 수 있을 거라고, 다시 범죄를 저지르고 돌아오더라도 받아줄 거라고 믿었다.

· 프레드 - 마이클
둘은 파트너로서 서로를 믿었다. 적어도 서로가 서로를 배신하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범죄자이기에 어떤 배신의 낌새도 없이 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말이다.

· 키튼 > 버벌
키튼은 버벌을 믿었다. 쿠얀의 말대로 버벌이 자신보다 부족한 상대이기 때문에 배신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버벌의 거짓 진술 속 말처럼 정말 친구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둘 중 어떤 이유든 부두 폭발 사고에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이디를 부탁한다는 말을 전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키튼은 버벌을 믿고 있었다.

· 카이저소제 > 코바야시
영화의 후반부에서 버벌을 태우러 온 코바야시를 보고 그는 카이저소제가 아마 유일하게 믿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이저소제의 말을 전하러 온 순간에는 그냥 전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을까 했는데, 사건을 종결짓는 그 순간의 마지막 단계(그 장소를 떠나는 것)를 남에게 맡기다니. 코바야시가 만약 약속대로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버벌은 쿠얀에게 잡혔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 쿠얀 > 버벌
쿠얀은 버벌의 진술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였다. 그가 그의 입으로 말한 것처럼 버벌이 단지 절름발이였기 때문에 틈을 보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 관람객 > 버벌
감독의 의도대로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쿠얀처럼 버벌을 믿게 된다.(물론 아닌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대부분!) 이 영화가 아직까지도 최고의 반전 영화로 언급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서 믿음으로 인한 피해를 본 사람과
이득을 얻은 사람
을 구분해보면 이렇다.

 


( - )

1. 이디
키튼은 결국 다시 범죄에 손을 댔고, 그런 키튼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2. 키튼
버벌을 믿고 이디의 안전을 맡겼으나 결국 버벌의 손에 죽는다. 의심한 적이 없던 만큼 큰 배신감을 느끼며 생을 마감한, 개인적으로 가장 매력적이고 불쌍한 캐릭터였다.

3. 쿠얀
범인과 함께 한참을 있어놓고도 범인을 놓쳤다. 아마 앞으로도 잡을 기회는 없지 않을까 싶다.

 

( + )

1. 키튼
모든 사람의 신뢰를 잃은 그이지만, 범죄자가 아닌 한 명의 남자로 자신을 사랑해주는 이디를 만날 수 있었다. 이디를 믿고 사랑할 수 있는 시간들을 보냈다는 것 자체가 그 어떤 것보다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2. 프레드, 마이클
이렇게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생활을 하며 살아온 둘이지만, 개죽음을 당해도 찾아와 슬퍼하며 묻어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게 서로에게 작은 축복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3. 버벌(카이저소제)
그 후에 믿음이 깨져서든, 혹은 이 사건을 아는 사람을 모두 없애기 위해서든 어떤 이유에서라도 코바야시를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그 시간, 그 장소에서 차를 타는 계획을 세우고 차를 탔던 그때만큼은 코바야시를 믿었기에 완벽히 탈출할 수 있었다.

4. 관람객
결국 버벌의 진술을 믿었기에 반전에 놀랄 수 있었고 흥미롭게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

 

 


결론 없이 시작한 글이었기에 글을 쓰면서도 내 글의 결론이 궁금했다. 하지만 아직도 결론을 모르겠다. 결국은 당연하다. 믿어서 피해를 본 사람들이 믿지 않았더라면, 믿어서 이득을 본 사람들이 믿지 않았더라면 반대의 상황에 처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여기서 더 옳은 게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조금 더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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